꼬꼬무 제주 4.3 비극 3만명 사람들은 왜 무참히 살해됐나
제주 4월 3일은?
출처 : 제주 4·3평화재단 사건 진상조사 보고서 <참고>
지난 방송에서 ‘꼬꼬무’는 ‘백골의 죄와 시멘트-1948, 사라진 사람들’ 편에 출연해 지난 4월 제주 4.3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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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크리스마스를 사흘 앞둔 제주도 다랑시 오름 인근. 캠코더를 든 은희와 탐사대는 억새밭을 헤치고 무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찾고 있는 것은 잃어버린 마을입니다. 또 다른 탐사팀원인 동만 씨는 오랜 시간 헤매다 지친 탐사팀원들 사이에서 작은 구멍을 발견했습니다.
동만이가 구멍을 막고 있는 돌을 슬그머니 치워버렸고 동굴이 나타났습니다. 기삼선배가 손전등을 켜고 동굴을 밝히는 순간 하얀 공 같은 것이 반짝이며 빛났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하얀 공의 정체는 다름 아닌 해골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주위를 둘러봤을 때, 뼈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옆에 두개골이 있습니다. 그 옆에 두개골이 있습니다. 동굴에서 하얀 뼈 시체 더미가 발견되었습니다. 동굴 안에서 일어난 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동굴 속 해골 시신의 정체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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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3월 1일 제28주년 3·1운동 기념식이 열렸고, 오후 2시 북국민학교 3·1운동 행사가 끝나자 제주읍에서는 군중들이 거리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시위대가 관덕정을 거쳐 서문통까지 간 뒤 관덕정 인근에서 기마경찰관의 말발굽에 어린이가 다쳤습니다.
이때 기마경찰이 다친 아이를 뒤로하고 떠나자 흥분한 군중이 돌을 던지며 항의했고, 관덕정 인근에 배치된 무장경찰이 군중을 향해 총을 쏘았습니다.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숨졌고, 이 사건은 기폭제가 됐고, 그때까지 별다른 소란을 피우지 않았던 제주 사회가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제주 4·3의 도화선으로 불리는 3·1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숨진 3·1 사건에 반발해 1947년 3월 10일부터 세계 역사가 전무한 민관합동 총파업이 시작됐습니다. 미국은 제주도민의 총파업으로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지목했습니다. 본토에서 응원 경찰이 대거 출동했고, 극우 청년단체인 서북청년회 회원들이 잇따라 제주에 들어와 경찰과 행정기관, 교육기관 등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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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적색 사냥’을 핑계로 테러를 일삼으며 민심을 자극한 것도 4·3 사태의 발단이 됐습니다. 당시 한반도는 분단의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남로당 제주도당은 분열된 민심과 5·10 독립선거 반대 투쟁을 결합해 경찰과 서청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무장봉기를 내걸었습니다.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한라산 자락의 오름마다 봉화가 붉게 타오르며 남로당 제주도위원회가 주도한 무장봉기가 시작되었습니다. 350명으로 구성된 군대는 12개 경찰서와 북서청년회를 포함한 우익 단체 회원들의 집을 공격했습니다.
전국적으로 5·10 선거에 반대하는 유혈사태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5·10 총선을 앞두고 미군정 및 무장세력과의 평화협상(4월 28일)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협상 사흘 뒤인 5월 1일 제주읍 오라리 마을에 우익 청년단체가 불을 지른 데 이어 3일에는 미군이 경비대에 총공격을 명령하면서 협상이 결렬됐습니다.
경찰은 아우라리 마을에서 경찰의 지원을 받는 우익 청년 단체 회원들의 방화로 무장한 군대를 기소했습니다. 미군정은 ‘원시 방화 사건’ 이후 평화적 해결 대신 무력에 의한 강경 진압 작전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군은 주민들을 산으로 보내 5·10 선거를 무산시켰으며, 5·10 총선(200개 선거구)에서 과반 득표율 미달로 무효 처리된 곳은 제주도 2곳에 불과했습니다.
그러자 미군정은 한국의 단일 정부 수립을 방해하는 불순한 세력의 음모로 판단했습니다. 미군정은 지난 6월 23일 제주도 총사령관으로 미 대령을 파견해 무리한 체포작전을 벌여 재선을 시도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하자 충격에 빠졌습니다. 결국 제주도에서 강경 예속작전이 펼쳐지면서 도민들이 집단으로 희생되는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